본문 바로가기
AND/교양도서

2020.5.27 "당신이 옳다"

by 밍미 2020. 8. 17.

마음은 언제나 옳다. 하지만 감정이 옳다고 행동까지 옳은 것은 아니다.

 

 읽은 지 한참 되었으나 블로깅이 게을러 이제야 쓰는 독후감이다. 읽자마자 써도 에디터만 꺼내면 쓰려던 내용을 잊어버리곤 하는데 내가 읽을 때 느꼈던 감정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으려나 걱정은 되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써보겠다!

 

 글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내가 읽어왔던 심리학 관련 도서들은 모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서 내가 원하는 대로 상황을 이끌어내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혜신님의 책에는 '나의 이익'을 위한 심리학이 아니라, '나의 심리적 건강'을, 내가 대하는 '상대방의 심리적 건강'을 위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렇게 곰곰이 생각해보면서 왜 이 책의 소개글이 심리적 CPR인지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 상대방이 나에게 불만을 토로할 때, 또는 그 불만에 따른 어떤 행동을 보여줄 때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어떻게 대해줘야 하는가. 이런 내용은 보통 자식기르는 부모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심리상담사에게만 중요했다. 물론 이런 것에 대해 신경 쓰는 사람은 많지만 '상대방을 위해' 올바르지 않은 대처를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정혜신 님은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의 속마음을 들을 땐 충조평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충조평판의 다른 말은 '바른말'이다. 바른말은 의외로 폭력적이다. 나는 욕설에 찔려 넘어진 사람보다 바른말에 찔려 쓰러진 사람을 과장해서 한 만 배쯤은 더 많이 봤다. 사실이다.

 그렇다. 생각해보면 나도 많은 사람들에게 '바른말'을 많이 하곤 했다. 상대방을 위한 말이지만 상대방에게는 배려 없는 말이 되기도 하고, 상대방도 정답은 알고 있지만 그저 들어주기만을 바랐을 수도 있다. 나는 그저 상대방이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얼마나 많은 '바른말'을 해왔던가에 대해 생각하고 지금은 최대한 줄여나가려고 하고 있다. 아직 100퍼센트 고쳤다고는 말 못 하지만, 내가 지금 '바른말'을 하려고 한다 싶으면 상대방에게 열심히 설명해준다. 네가 이렇게 저렇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이건 단순히 내 의견일 뿐이고, 네가 그런 선택을 하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런 선택을 한 이유가 있을까? 같이 의견을 나눠보는 건 어떨까? 하고.. 물론, 이것도 정혜신 님이 알려주신 방향은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고쳐나가고자 노력 중이다.

 

 또한 몇몇 사례들은 엄마와 자식간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소통의 불합치를 보여주는데, 내 어릴 때가 떠오르기도 하고, 누군가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기도 하고, 친구들의 나의 현재 부모님과의 관계가 생각나기도 한다.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걸까.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고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지만, 딸도 아들도 자식이 처음이다. 나도 처음 해보는 거니 이해해달라는 말보다는 우리 같이 노력해보자가 맞는 것 같다. 쉽게 결로가 생기기 쉬운 만큼 붙기도 쉬운 것이 가족 관계 아닐까? 그리고 이렇게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소통 방법들은 부모 자식 간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며, 자매형제끼리도 마찬가지이고, 친구, 지인, 직장동료끼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 관계가 기쁨과 즐거움이거나 배움과 성숙, 성찰의 기회일 때다. 그것이 관계의 본질이다. 끊임없는 자기 학대와 자기혐오로 채워진 관계에서 배움과 성숙은 불가능하다. 자기 학대와 자기혐오가 커질 수밖에 없는 관계라면 그 관계는 끊어야 한다.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면 끊어야만 자기를 지킬 수 있는 관계들이 의외로 많다. 관계를 끊으면 그때서야 상대방도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최소한의 계기가 만들어진다. 그런 계기로 삼지 못해서 결국 대가를 치르게 되어도 그건 그의 몫이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본인이 우울증일 경우에도, 내가 아닌 상대방이 그럴 경우에도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의사전달 방법의 적절한 취사선택이 필요하다. 물론 내가, 상대방이 특별하고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빼놓고. 그런 사람들의 입장에서, 상담가의 입장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풀어주는 것이 좋았다. 나는 어떻게 지내왔던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말을 꺼냈던가. 많은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벼랑 끝에 선 사람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해줘야 하는가. 결론적으로 해줄 말이 별로 필요치 않다.

그때 필요한 건 내 말이 아니라 그의 말이다. 그의 존재, 그의 고통에 눈을 포개고 그의 말이 나올 수 있도록 내가 그에게 물어줘야 한다. 무언가 해줘야 한다는 조바심을 내려놓고 지금 그의 마음이 어떤지 물어봐야 한다. 사실 지금 그의 상태를 내가 잘 모르지 않는가. 물어보는 게 당연하다.

'AND > 교양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08.26 "사일런트 페이션트"  (0) 2020.10.25
2020.7.20 "팩트풀니스"  (0) 2020.08.17
2020.5.16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0) 2020.05.16
2020.5.5 "신더(Cinder)"  (0) 2020.05.05
2020.3.20 "이기적 유전자"  (0) 2020.03.2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