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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교양도서

2020.5.16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by 밍미 2020. 5. 16.

이 모든 게 실화라니..!

 

그 누구의 동정과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것, 이것 또한 가혹한 시련이다.
그녀는 장애인이지만 그것이 겉으로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녀는 시각장애인도 아니고 신체가 마비되지도 않았다.
겉으로 나타나는 장애는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종종 거짓말쟁이나 얼간이로 취급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숨은 감각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같은 취급을 받는다.

 

 출근길 퇴근길에 읽는데 정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빠져들었다. 너무 안쓰러웠던 사람들도 있었고, 본인이 처한 상황 그대로를 즐겁게 받아들인 채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었다. 이러한 사람들에 대한 글들이 단순한 정신병에 대한 나열이 아니라, 작가가 신경과 의사로 일하면서 겪은 증상들, 그리고 그 증상에 대한 원인들과 이에 대한 작가의 감정들이 잘 쓰여있어 내용이 더 와닿았다.

 

 나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사람의 신경계라는게 정말 예민하다는 것이었다. 작은 혹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들려주기도 했다. 이런 증상들은 정말 멀쩡하던 사람에게 갑자기 찾아오기도 했는데, 읽으면서 "자고 일어났는데 나에게 저런 증상이 갑자기 생긴다면..?" 하고 상상을 해보게 되기도 했다. 너무 무서웠다. 갑자기 사람이나 물체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후각을 잃거나, 몸의 균형을 잃는다면 나는 저렇게 잘 이겨낼 수 있었을까.

 

그는 자신의 몸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대신 음악에 맞춰 행동할 수 있었다. 바로 그 때문에 그는 동작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면의 음악’이 멈추면 그는 당황해서 행동을 딱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은 외부 세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리는 자연 그대로의 자유라는 생득권을 빼앗겼는데도 그는 만족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그는 자신의 병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어떤 의미로는 그것을 극복했다. 그는 아마도 니체처럼 이렇게 외치고 싶을 것이다.
“나는 갖가지 건강상태 사이를 왔다 갔다 했고 지금도 그것을 계속하고 있다. 병 없는 인생은 생각할 수 없다고조차 말할 수 있다. 지독한 고통을 극복했을 때야말로 정신은 궁극적으로 해방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기묘한 세상과 접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통상적인 상식이 뒤집히는 세계이다. 병리 상태가 곧 행복한 상태이며, 정상 상태가 곧 병리 상태일 수도 있는 세계이자, 흥분 상태가 속박인 동시에 해방일 수도 있는 세계, 깨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몽롱하게 취해 있는 상태 속에 진실이 존재하는 세계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큐피드와 디오니소스의 세계이다.

 

 제목만 보고 그냥 소설책이겠거니~ 하고 가볍게 읽었다가 엄청 진지하게 읽게 된 책이었다. 다만 걸으면서, 환승하면서 책을 계속 읽으며 움직일 수는 없어 읽다가 말았다가 하니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원래 영화나 책을 두 번 씩 읽는 편은 아니지만 나중에 또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유려한 문체나 극적인 장치 등이 있는 소설을 읽는 것보다 더 좋았다.

 

 책을 읽으면서 느낌이 좋아서 체크해뒀던 문장들을 적으며 이 글을 마친다.

뇌에서 표현의 최종적인 형태는 ‘예술’ 이다. 혹은 이것을 예술의 용인이라고 바꿔 말해도 좋다. 즉 인간의 경험과 행위는 장면과 선율이 되어 표현되는 것이다.

연극에서 맡는 배역에는 조직하고 통합하는 힘이 있다. 연극이 계속되는 한 ‘배역’은 통합된 인격을 계속해서 지니기 때문이다. 맡은 배역을 연기하거나 무언가가 ‘되는’ 능력은 인간의 특권이다. 여기에서 지능의 격차 따위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 점은 어린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노인들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리베카와 같은 사람들을 볼 때면, 가슴 아플 정도로 더할 나위 없이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해심이 아주 깊은 사람이 그를 고용해서 정성스럽게 지도하지 않으면,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는 다른 많은 자폐증 환자와 마찬가지로 주립병원의 구석진 병동에서 무의미한 나날을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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