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너무나 매력적인 소재. 함께 알콩달콩 잘 살고있던 남편을 죽인(듯한) 모습으로 발견된 화가 앨리샤. 남편의 얼굴에는 다섯발의 총알이 박혔고, 그 사건 이후 앨리샤는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누구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않은 채 있다가 그림을 하나 그려낸다. 대중들은 앨리샤를 "희대의 악녀"로 소비하며 앨리샤가 그려낸 그림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그리고 앨리샤는 정신병동에 감금된다.
앨리샤는 너무 흥미로운 캐릭터였다. 왜 심리치료사인 남자주인공이 그녀에게 매료되어 그녀를 치료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나였어도 내가 심리학자라면, 심리치료사라면, 심리학을 조금이라도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녀에게 접근해서 이런 저런 치료를 시도하려고 했을 것이다.
예민하고, 사납지만 매혹적인 매력이 있었다. 계속 보게되고, 책을 덮어도 궁금해지고, 그녀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남자주인공의 이야기도 꽤 많이 나오고 그녀가 등장하는 부분은 오히려 얼마 되지 않지만 나는 남자주인공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계속 그녀만 바라보게 됐다. 시선을 빼앗겨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내용은 복잡하고, 얽히고 섥히며, 시점이 왔다갔다, 시간대도 왔다갔다 했다. 그래도 집중이 안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집중하게돼서 출근길에 내려야 할 지하철 역을 놓치기도 했다. 읽는 내내 숨을 죽이고 내용에 몰입하게 됐다.
내용이 흘러가는 것과 결말에 대해서는 정말정말 할 말이 많지만, 이 책을 다들 꼭 읽었으면 해서 적지는 않겠다.
원래 추리물이나 스릴러물을 좋아하지만, 간만에 본 제대로 된 스릴러물이라고 생각한다.
읽은 시점과 글을 쓰는 시점이 꽤 차이나지만, 그래도 그녀의 시선이 뇌리에 꽂혀 잊혀지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가장 초기 몇 년 동안은 기억이 존재하기 전의 공간에서 산다. 우리는 우리가 이런 태고의 안개 속에서 인격이 완전하게 형성된 상태로 솟아났다고 생각하길 좋아한다. 마치 바다 거품에서 완벽한 모습으로 태어난 아프로디테처럼. 하지만 뇌 발달에 대한 연구가 쌓인 덕분에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는 절반쯤 형성된 뇌를 갖고 태어난다. 성스러운 그리스의 신이라기보다는 질척거리는 진흙 덩어리에 가깝다. 정신분석 전문의 도널드 위니캇은 “아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의 성격은 고립된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생겨난다. 우리는 보이지 않고 기억할 수 없는 힘에 의해 모양을 갖추고 완성된다. 말하자면 우리 부모에 의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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