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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교양도서

2021.01.05 "죽은 자의 집 청소"

by 김쫘 2021. 1. 6.

누군가 홀로 죽으면 나의 일이 시작된다

 

양손에 납작하고 투박한 검은 상자 두 개를 들고 있습니다. 버튼을 누르고, 저 높은 곳에 머무는 엘리베이터가 내가 서 있는 일 층까지 내려오길 잠자코 기다립니다. 현장에 처음 방문하는 날이면 엘리베이터는 아득한 곳에 기거하는 낯선 존재로 느껴집니다. 습관적으로 몇 번이나 고개를 들어 두 자리였던 붉은 숫자가 점점 겸손하고 낮은 숫자가 되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시선은 문 위의 숫자를 향하지만 그 숫자 하나하나의 의미가 마음에 스미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엘리베이터 앞에서의 시간이란 모든 이에게 그런 방식으로 공평하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겠군요.
용서하세요, 문 앞에 도착하더라도 애써 예의를 갖춰 벨을 누르지는 않겠습니다. 저 안에서 기다리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당신이 남긴 것이니까요.

 

 

글쓴이이자 이 책의 화자는 특수청소업체인 하드웍스의 대표 김완이다.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상태(..)의 죽음을 마주한다는 것은 어떤 감정일까. 망자들의 마지막 모습을 상상하고, 위로도 해주는 모습들이 덤덤하게 풀어내는 것 같으면서도, 감정의 동요가 큰 듯 보이기도 한다.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와 일면식도 없던 사람이 죽었고, 그 죽음으로 인해서 내가 일을 얻고 돈을 번다는 것이 어떤 감정일 지는 감도 잡히지 않는다. 일이기 때문에 한 발짝 멀리서 볼 수 있게 될까? 처음엔 힘들지만 점점 무뎌지게 될까? 아니면 그 고통의 자국 하나 하나를 지우면서 괴로움이 점점 더 쌓여갈까?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고는 하지만, 사람이 떠나고 난 자리는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물론 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이 떠나고 난 자리는 동화처럼 아름답지 않다. 동화 속의 죽음이건, 소설 속의 죽음이건, 그 모든 씬의 비하인드에는 그런 아름답지 않은 장면들을 처리해주고 편집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란 걸 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짧은 책이고 금방 읽어 내릴만한 쉬운 문체이지만 읽으면서 인생에 대해,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 책이었다.

 

 

수도꼭지의 아이러니는 누군가가 씻는 데 도움이 되고자 만들어졌지만 결코 스스로 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집이라면 그가 누구든 그곳이 어디든 가서 군말 없이 치우는 것이 제 일입니다만 정작 제가 죽었을 때 스스로 그 자리를 치울 도리가 없다는 점이 수도꼭지를 닮았습니다. 언젠가 죽은 이가 숨을 거두고 한참 뒤에 발견된 화장실에서 수도꼭지에 낀 얼룩을 닦으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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